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나는 왜 계속 적는가

가끔 메모장을 열어놓고 이런 생각을 한다.

이 글을 누가 보게 될까?

누군가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고, 잘 정리해서 설명할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나중에 반드시 다시 읽겠다는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생각이 떠오르면 적고 싶어진다. 몇 줄을 쓰다가 멈추기도 하고, 한참 뒤에 보면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나조차 잘 모를 때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기록한다.

글은 꼭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해야 할까

예전에는 글을 쓴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읽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내용이 분명해야 하고, 가능하면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메모장에 남기는 글들은 조금 다르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것도 아니고, 정답을 알려주려는 것도 아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지나가던 생각을 붙잡아두는 일에 가깝다.

글쓰기보다 기록이라는 말이 더 잘 맞는 이유다.

정보를 전달하는 글은 독자를 향하지만, 기록은 지금의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쓴다. 생각이 완성되지 않아도 된다. 결론이 없어도 된다. 그때 내가 무엇을 궁금해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만 남아 있어도 기록의 역할은 끝난다.

과거의 글을 읽는 이상한 재미

나는 지난 기록을 삶의 지침처럼 매일 꺼내보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써놓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연히 오래된 글을 다시 만나면 묘한 재미가 있다.

“그때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지금과 비슷한 고민을 그때도 했네.”

“왜 이렇게까지 걱정했을까.”

예전의 나는 과거 기록을 다시 볼 때 느끼는 재미를 단순히 ‘도파민 때문인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확한 과학적 설명보다 그 감정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오래된 기록 속에서 낯설면서도 분명히 나인 사람을 다시 만나는 느낌. 아마 나는 그 만남을 기대하며 오늘의 생각도 남기는 것인지 모른다.

기록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차이가 생겼는지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록은 때로 불편한 거울이 된다

지난 글을 읽는 일이 언제나 즐거운 것은 아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같은 고민을 반복하는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종종 성공한 사람과 평범한 나를 비교한다. 나약하다는 말을 너무 쉽게 나에게 붙이기도 한다. 신앙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과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태도를 혼동한 적도 있다. 그런 기록을 다시 읽으면 자신감과 자존감을 떨어뜨린 것이 상황만은 아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를 설명할 때 선택한 단어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기록이 없었다면 그 차이를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생각은 머릿속에 있을 때 빠르게 모양을 바꾼다. 하지만 문장으로 적으면 내가 어떤 단어로 나를 판단했는지 남는다. 그 문장을 다시 보며 “이 방향은 조금 바꿔야겠다”고 말할 수 있다.

깊은 생각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는 얼마나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일까. 이런 질문을 하면 기록에도 어느 정도 깊이가 있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매번 의미 있는 결론을 내리고, 잘 정돈된 통찰을 남겨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기록은 금방 숙제가 된다.

지나가는 생각이어도 괜찮다. 오늘 내가 어떤 상황에서 멈칫했는지, 무엇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는지, 어제와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만 적어도 된다. 완성되지 않은 생각은 실패한 글이 아니다. 아직 진행 중인 나의 흔적이다.

요즘은 기록을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으려고 한다.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가
  • 그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 지금 다시 보면 무엇을 다르게 생각하는가

이 세 가지만 적어도 충분하다.

미래의 나에게 남기는 작은 표식

여전히 나는 왜 기록하는지 완벽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지난 글에 매달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지금의 생각은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사라진 생각은 나를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남기지 않는다. 기록은 그 자리에 작은 표식을 세우는 일이다.

나중의 내가 그 표식을 발견했을 때 잠깐 웃을 수도 있고, 부끄러워할 수도 있고,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도 있다. 그 반응까지 포함해서 기록은 나를 이해하는 재료가 된다.

그래서 오늘도 적는다.

아무도 보지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 대표 이미지는 OpenAI의 생성형 AI 도구로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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